서산 보원사지

지정 : 사적 제316호
종류 : 사지
주소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시대 : 통일신라시대


유적내용 : 가야산 서북쪽에 동향하여 자리잡은 절터로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절터에서 나온 금동불입상이 6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백제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어 6세기 중엽에는 창건된 것이 아닌가 한다. 더욱이 이 지역은 중국의 남조 양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던 시기에 길목 역할을 한 곳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보원사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로 보아서도 보원사가 이 무렵에는 이미 창건되어 있었으리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태안 반도를 거쳐 해미현으로 이르는 바닷길은 당시 중국과 교류하는 무역 항로였으며, 해미-운산-예산-부여로 이어지는 육로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보원사는 백제 멸망 이전까지 크게 융성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백제 멸망 후에는 어떠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최치원이 남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의하면 화엄 10찰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기에는 탄문(坦文, 900-975) 스님과 관련되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음이 탄문의 탑비 명문에 의해 밝혀졌다. 이후 보원사는 화엄종의 성쇠와 궤를 같이 하여 고려 후반 이후로 사세가 기울어져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까지도 폐사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호산록(湖山錄)>>을 참조하면 보원사의 사우는 모두 없어지고 비석, 탑, 철불 1좌만이 남아 있었는데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참고문헌 : 서산문화원 외, 1991, <<서산태안문화유적>> 상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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