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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道安士 *.147.80.208

一道安士 우선 제가 라디오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잘못 이해했으면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남당사서;

태조왕 3년: 2월, 나라 서쪽에 10성을 쌓았다. 8월, 나라 남쪽에 큰 병충해가 들었다.

태조왕 62년: 8월, 나라 남쪽에 큰 병충해가 들어 남쪽바다를 순수하다 10월에 돌아왔다.


삼국사기;

태조왕 3년: 봄 3월, 요서에 10성을 쌓았다. 가을 8월, 나라 남쪽에 큰 병충해가 들었다.

태조왕 62년: 봄 3월, 일식이 있었다. 가을 8월, 남쪽바다를 순수하다 가을 10월에 돌아왔다.


라디오님의 생각:

본래 태조 62년에 요서에 10성을 쌓았는데 삼국사기가 이를 분리하여 태조 3년으로 옮겼다는 증거가 8월에 발생한 충해 기록이다. 즉 8월에 충해로 남해안을 3개월 순수한 이유를 지우고, 같은 병충해 기록이 있는 태조 3년으로 요서10성 축조기록을 옮겼다. 그 대신 중국 기록을 보고 일식기륵을 베껴 62년 3월조에 적어 넣었다.

------------------------------------------------------------------------------------------------------------------------------------------


이하가 라디오님 생각에 대한 제 의문사항입니다.


[8월의 병충해]

8월에 발생한 병충해 기록은 메뚜기나 풀무치 같은 메뚜기목 곤충이 추수기인 가을(7월, 8월, 9월)에 창궐하는 현상입니다. 삼국사기에 황충기록이 많이 등장하는데 마찬가지로 추수기인 8월이 중심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도 메뚜기떼가 나타나는데 역시 추수기입니다. 즉 8월에 병충해가 창궐하는 것은 규모가 문제일 뿐 그리 특이한 사항이 아니고, 이런 병충해는 태조 3년에도 나타날 수 있고 62년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무려 60년만에 나타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단지 이를 근거로 병충해가 나오는 태조 3년조의 기록이 본래 62년조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설령 삼국사기에 남당사서에서 남해 순수 원인으로 기록된 충해 기록이 빠졌다고 해도, 요서 10성 기록까지 한꺼번에 이동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지 않습니까? 남당도 요서 10성을 국서 10성을 바꾸어 태조 62년이 아니라 태조 3년에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축조한 달이 2월(남당)과 3월(삼국사기)로 1달 차이가 나는데 이는 10성 축조에 여러 달이 걸렸을 것이므로 이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일식]

두번째는 일식기록입니다. 삼국사기 편집진은 당시 알려진 모든 중국사서를 가져다 우리 기록과 비교해보았습니다. 양쪽이 일치하면 별 의심 없이 그대로 인정하여 기록하고 양쪽이 다른 경우는 한국기록을 우선하되 중국기록을 참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4세기 중국사서를 보니 요서에 백제가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사서를 보니 안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기록을 우선하여 4세기 요서백제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2세기 중국사서를 보니 마한군이 요서에서 고구려와 함께 군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서를 보니 같은 시점, 같은 장소에서 고구려가 군사활돌을 하고 있으나 마한군 기록만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삼국사기 편집진은 2세기에 요서에서 고구려가 마한과 군사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보고, 단지 우리 사서에서 마한이 빠졌다고 판단하여 마한을 첨가하는 것입니다. 즉, 앞뒤를 살펴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는 우리 기록에 없어도 중국기록을 보고 적습니다. 서로 보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기록과 완전히 모순이 되는 중국기록인 경우 앞뒤가 전혀 연결이 안 되면 우리 기록을 선택하였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천체기록 중에 일식기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식은 천체현상 중 관측이 쉬운 편에 속합니다. 삼국사기에 실제로 일어난 천체현상기록들 중에는 금성기록을 비롯한 관측이 어려운 기록들도 상당수 있고, 이 기록들은 중국사서에는 없는 독자기록들입니다. 관측이 어려운 기록들도 가진 사서가 상대적으로 관측이 용이한 일식기록을 구태여 베낀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양쪽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별 의심 없이 기록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으십니까?


삼국사기에는 타 사서에서 볼 수 없는 그리고 실제 일어났던 천체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당 사서에, 다른 사서에는 볼 수 없고 남당사서에만 나오는,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던 천체관측기록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단 하나라도 있으면 남당사서는 적어도 고천문학자료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태조왕 초창기의 통치자]

삼국사기를 보면 태조왕은 실제로는 차대왕에게 국가업무 전체를 인계하는 태조 69년에 죽었습니다. 그래도 재위기간 69년은 너무 깁니다. 삼국사기 역시 태조왕이 어려서부터 통치한 것이 아니라 태후가 통치하였다고 하여 실제로는 다른 인물이 통치했다고 하고 있고, 태조왕이 재사의 아들이라고 기록하여 재사가 초창기의 실제 통치자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아마 삼국사기 태조왕조를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추정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왕으로 기록되는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를 보아도 실권자와 왕이 반드시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누가 만일 조선말기 고종의 전반기는 대원군이 통치하였는데 조선왕조실록이 고종이 왕이었다고 잘못 록하였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따라서 재사가 통치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왕으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역시마찬가지입니다. 초기 3루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 시대에 통치자는 적어도 5-6명이 존재했지만 백제왕으로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3명뿐이었습니다. 즉 통치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백제왕이 3명뿐이므로 왕력은 3명만 백제왕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태조왕조의 기록은 당시 고구려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구려왕으로 기록되는 기준만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남해순수 원인]

이것은 주제를 약간 벗어난 것인데, 태조왕이 남쪽바다를 3개월 순행한 이유에 대하여 삼국사기는 별다른 말이 없으나 남당은 충해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3개월이나 떠돌아다닌 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사항입니다. 만일 다른 도시나 성에 머물렀다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엄연히 순수입니다. 남쪽바다면 황해바다 북쪽일텐데 고구려 수도 남쪽으로 무려 3개월이나 떠돌만한 먼 바다가 있습니까? 바다까지 말을 타고 가면 1주일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태조왕 62년조의 3개월 남해 순수는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기록입니다. 누구나 이유를 생각하겠지만 추수기에 발생하는 메뚜기떼 때문에 3개월이나 수도를 비웠다는 것은 명분이 좀 약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소금물이 많은 바다가 왜 나옵니까? 메뚜기떼는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에는 약합니다. 따라서 남쪽 바다가 아니라 남쪽 들판이 적합하지 않습니까? 장수왕이 남쪽바다에서 소금물을 떠다가 메뚜기떼를 퇴치하기라도 하였다는 말은 아닐것이고.


왕이 수도를 비우고 3개월을 떠도는 것은 396년에 잔국과의 전쟁에 나간 광개토왕정도가 유일할 것입니다. 왕의 남해순수 3개월은 충해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고 오히려 고구려 국운이 걸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고구려 수도가 내륙에 있고 평야지대는 남쪽에 더 많을 것이므로, 메뚜기떼가 발생한다면 평야지대일 것이고, 그러면 남쪽 순수는 합리적인 방향입니다. 자연스러운 원인이 아니라면 차라리 삼국사기처럼 아무 말도 않고 대신 앞뒤를 읽어보고 스스로 추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댓글 '8'

라디오

2010.02.18 20:57:04
*.88.40.149

우선, 님이 약간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점검해 봅시다.

A: 삼국사기; 태조왕 3년: 봄 3월, 요서에 10성을 쌓았다. 가을 8월, 나라 남쪽에 큰 병충해가 들었다.

B: 고구려본기 태조왕 3년, AD55년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秋八月 國南蝗害穀
3년(AD55년) 봄 2월에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군사를 대비하였다.
가을 8월에 나라의 남쪽에서 누리[蝗]가 곡식을 해쳤다.

고구려본기 태조왕 3년조에서 요서 10성을 쌓은 달수는 3월달이 아닌, 2월달입니다.
님은 틀리게 적어 놓은거죠.

라디오

2010.02.18 21:10:17
*.88.40.149

"라디오님의 생각:
본래 태조 62년에 요서에 10성을 쌓았는데 삼국사기가 이를 분리하여 태조 3년으로 옮겼다는 증거가 8월에 발생한 충해 기록이다. 즉 8월에 충해로 남해안을 3개월 순수한 이유를 지우고, 같은 병충해 기록이 있는 태조 3년으로 요서10성 축조기록을 옮겼다. 그 대신 중국 기록을 보고 일식기륵을 베껴 62년 3월조에 적어 넣었다."

위에 "라디오의 생각'이라 적어 놨지만, 엄연히 님이 받아 들이는 "님의 생각"인거죠.

제가 전달하고 하는 사항이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전달하다 보니,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이 헥갈리기가 쉽습니다.
사서가 벌써 3가지가 인용되고, 비교되고 있기 때문에..그런 현상이 발생되는 것인데..
전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될거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이 역사지식이 일정한 수준에 올라와 있어야 하고, 특히나 한문 기본 실력이 있어야 이해가 되는거죠.
그렇지 않는 초보자같은 경우는 제 글이 어려워서..이해를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보다 더 자세히 적으면 좋겠지만, 여러가지 사항을 더 많이 적어 놓으면 더 복잡하게 되어..더 헥갈립니다.
사서가 인용되면서 글이 올라가는지라.. 사서자체분량 때문에..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짧아지게 되는 단점이 발생하는거죠.
사서가 인용되지 않으면 또 문제가 발생하기에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제 글을 완전히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제가 글 재주가 없어서, 글을 잘 못 쓰는 것도 있고.
게다가.. 본기신편열전과 고구려사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스스로 연구를 하지 않아서 그런거죠.

라디오

2010.02.18 22:27:13
*.88.40.149

얘기가 옆길로 샜는데, 돌아 와서..

고구려사초 太祖皇帝紀(태조황제기) 4년, AD115년
四年 乙卯 八月 國南蝗 巡視而至南海 十月 還
= 8월, 나라 남쪽에 蝗(황)이 들어, 巡視(순시)하여 南海(남해)에 이르러, 10월에 돌아왔다. 

고구려본기 태조왕 3년, AD55년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秋八月 國南蝗害穀
3년(AD55년) 봄 2월에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군사를 대비하였다.
가을 8월에 나라의 남쪽에서 누리[蝗]가 곡식을 해쳤다.


고구려본기 태조왕 62년, AD114년 
六十二年 春三月 日有食之 秋八月 王巡守南海 冬十月 至自南海
62년(AD114년) 봄 3월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가을 8월에 왕은 남해를 순수하였다.
겨울 10월에 남해로부터 돌아왔다.
----------------------------------------------------------
*고구려사초 태조황제기 4년조에서 8월달 기사가 삼국사기 태조왕 기사에서는 3년조와 62년조에 각각 나누어 분산 배치되었다는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사항입니다.

고구려사초에 두 기사가 한 기사로 묶여서 나와 있기에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사서 원문을 들이 대는거죠.

고구려사초 원문을 근거로 제시했잖아요?
근거 없이 떠들었나요?

*60년= 간지로 태조왕의 기사가 움직일 수 있다고 라디오는 말하던데, 왜 이렇게 될 수 있느냐 하면..
유리왕의 재위년수와 대무신왕의 재위년수가 고구려사초에서는 각각 10년씩 아래로 늘어나 있습니다.
총 20년이 내려와 있는거죠.

그런 고로, 민중왕같은 경우, 고구려사초에서는 AD44년이 아니라, AD64년이 민중왕 원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閔中帝            5년        64 ~ 68      //    민중왕           5년      44  ~    48

게다가, 神明仙帝의 재위년수가  40년이 되어 있어, 20년+ 40년= 60년. 더하기 되어서.. 총 60년으로 만들어져서..60년이 이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년에 대해 이해가 깊어야 하는거라 말로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라디오

2010.02.18 22:39:10
*.88.40.149

일식기사는 외부 사서에서 퍼 온 것입니다.
일식 기사에 대해서는 집착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아요. 삼국사기에서는 형식적이라고 보는거죠.

삼국사기에서 은유법으로 표시해 놓은 것은 별개로 또 봅니다.
은유법으로 표시된 것은 유류기같은 사서를 통해서 몇개는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별도로 또 글을 올려야 해요.
이런 것은 사서 없이는 알아내기가 불가능합니다.

라디오

2010.02.18 22:54:25
*.88.40.149

본기신편열전과 고구려사초를 스스로 라디오만큼 연구를 해야 해요.
그런 사람만이 나랑 대화할 수 있는거에요.
역사연구 3년이 넘어가면서 수백명을 상대해 봤는데, 어찌 모를까...이젠 도가 텄는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대화가 되는거죠.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됩니다.

남당 사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되지 않아요.

껄껄

2010.02.18 23:34:43
*.72.71.205

라디오님은 남당사서라는것이 고구려사초, 백제사초 하는식으로 나누어져서 무슨 정통성이 있는 원사료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서가 그에 반하면 조작되었다고 보는 약간 골통스런 견해입니다.  그렇게하면 튀나요?

라디오

2010.02.19 01:23:02
*.88.40.149

튄다는 것보다는 연구대상은 충분히 되는거죠.
백제사초같은 말은 없는 것이고.. 그리고,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스스로의 판단의 몫인 것이고..

남당유고집의 영향력은 앞으로 점점 강화됩니다.
약하게 될거라 생각하나요?

라디오

2010.02.19 01:24:07
*.88.40.149

흠..그러면..올렸던 글중에 골라서 10개정도의 글을 연속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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