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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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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
2008.11
문자왕 3년의 살수전투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71561 2008.11.27 20:10:39 (*.147.81.84) 고구려사3 Comments 601 Views
독도님;
제가 문자왕이 어떠하다하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워, 대신 문자왕 부분에 관하여 제가 관심있는 글을 하나 올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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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문자왕 3년조에는 참으로 이상한 전투기록이 하나 등장한다.
문자왕 3년(494) 가을 7월, 우리 군사가 신라군과 살수벌판에서 싸웠다. 신라군이 패하여 견아성으로 들어가 지키므로 우리 군사가 이를 포위하였다. 백제가 군사 3천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므로 우리 군사가 물러났다.
패수나 대수가 어디냐는 질문은 이런 지명을 가진 강들이 여럿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 꼭 물으려면 어느 시대 어느 사서에 나오는 패수가 어디냐 하고 물어야 한다. 살수도 마찬가지다. 통상적으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살수라고 하면 청천강 혹은 그 이북으로 본다. 그런데 신라군과 백제군이 살수에서 고구려군과 전투를 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당사자인 신라 소지왕 16년조에도 이 기록이 나오는데 전투 장소는 역시 살수이다.
청천강은 평양북쪽이므로 이 살수가 청천강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더우기 신라군이 후퇴한 견아성이 충북지역 정도로 비정되므로 여기의 살수는 충북지역보다는 북쪽이겠지만 평양을 넘어선 청천강일 수 없다. 5세기 중반이면 신라는 충북을 넘어 경기지역까지 올라와 있었다고 보이므로 견아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살수는 고구려군이 내려왔다가 돌아갔으므로 경기도 정도에 위치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상한 이 살수의 위치를 경기도나 충북지역에 있는 작은 천에 비정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그런 작은 천의 전투를 살수라는 이름까지 붙여 기록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삼국사기에서 작은 천에 水자를 붙여 강으로 부른 다른 기록이 있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위불명의 사료들 중에 고구려 문자왕과 관련된 점토비문이 하나 존재한다. 거기에 한자까지 동일한 견아성을 비롯하여 문자왕 3년조의 전투를 언급하고 있는데, 강이름이 살수가 아니라 <패수>로 되어 있다. 만일 이 전투 장소가 <패수>라면 예성강으로 비정하면 되므로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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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문자왕이 어떠하다하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워, 대신 문자왕 부분에 관하여 제가 관심있는 글을 하나 올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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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문자왕 3년조에는 참으로 이상한 전투기록이 하나 등장한다.
문자왕 3년(494) 가을 7월, 우리 군사가 신라군과 살수벌판에서 싸웠다. 신라군이 패하여 견아성으로 들어가 지키므로 우리 군사가 이를 포위하였다. 백제가 군사 3천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므로 우리 군사가 물러났다.
패수나 대수가 어디냐는 질문은 이런 지명을 가진 강들이 여럿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 꼭 물으려면 어느 시대 어느 사서에 나오는 패수가 어디냐 하고 물어야 한다. 살수도 마찬가지다. 통상적으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살수라고 하면 청천강 혹은 그 이북으로 본다. 그런데 신라군과 백제군이 살수에서 고구려군과 전투를 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당사자인 신라 소지왕 16년조에도 이 기록이 나오는데 전투 장소는 역시 살수이다.
청천강은 평양북쪽이므로 이 살수가 청천강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더우기 신라군이 후퇴한 견아성이 충북지역 정도로 비정되므로 여기의 살수는 충북지역보다는 북쪽이겠지만 평양을 넘어선 청천강일 수 없다. 5세기 중반이면 신라는 충북을 넘어 경기지역까지 올라와 있었다고 보이므로 견아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살수는 고구려군이 내려왔다가 돌아갔으므로 경기도 정도에 위치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상한 이 살수의 위치를 경기도나 충북지역에 있는 작은 천에 비정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그런 작은 천의 전투를 살수라는 이름까지 붙여 기록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삼국사기에서 작은 천에 水자를 붙여 강으로 부른 다른 기록이 있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위불명의 사료들 중에 고구려 문자왕과 관련된 점토비문이 하나 존재한다. 거기에 한자까지 동일한 견아성을 비롯하여 문자왕 3년조의 전투를 언급하고 있는데, 강이름이 살수가 아니라 <패수>로 되어 있다. 만일 이 전투 장소가 <패수>라면 예성강으로 비정하면 되므로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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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47712
높이 20cm 정도로 홍토 흙을 구워 만든 사각기둥에다가 한 면에 3행씩의 약 105개의 글자가 새겨져있다.
1면
古鄒大加 助多時 在丙申年
□□□□□□造立碑 玄
□□□□□□者文曰
고추대가 조다(문자왕 아버지)시절인 丙申年(456, 장수왕 44년)에 (출생한 문자왕을 위해?) 비석을 세웠다. 비문에 말하기를
*안 보이는 글자가 많아 해석이 어려운데 만일 丙申年이 456년으로 문자왕이 태어난 해라면 63세이던 519년에 사망했다. 그렇지 않고 비문을 세운 해라면 문자왕 25년인 516년이 丙申年이다.
2면
天動 王恩排僞 使持節
都督 遼海諸軍事 征
東大將軍 領護東夷
하늘이 움직여 왕(문자왕)은 사지절도독 요해제군사 정동대장군 영호동이
3면
中郞將 遼東郡 開國公
與羅人 戰於<浿水> 陷保犬
牙城 (興邦)宜豊役 (功)恩
중랑장 요동군 개국공에 책봉되었다. 신라인과 <<패수>>에서 싸워 견아성을 함락하여 지키고 국민을 위해 의풍성(?)을 세웠다.
4면
國民永恩 奴客不忘
生世授國 安生善战
碑銘於墓前
국민은 영원한 은혜를 입었으니 잊을 수 없다. 세상에 나오셔서 나라를 이어받아 안정하고 전쟁을 잘 하였으니 능묘 앞에 비를 세워 글을 새긴다.
(□는 깨져나간 부분, ()는 불명확한 글)






답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문자왕 때의 고구려도 전성기였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알 수 없는 답변을 해주셔서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군은 견아성을 함락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비문에는 함락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이건 또 어떻게 된겁니까? 기존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그래고 새로운 질문에도 답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