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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
광개토대왕비문 해석 정정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65517 2008.11.14 17:19:37 (*.163.149.35) 백제사1 Comments 371 Views
921번 질문-다모라(聃牟羅)기사 출전 확인 부탁합니다....
에서 네 번째 붙인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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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殘不服義 敢出迎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刺迫城 橫△△△△便△城
2,殘不服義 敢出迎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刺迫城 殘兵歸穴 就便圍城
김 성호님이
한중일 국가기원과 그역사,맑은소리,2008에서
왕건군의 석독을 그대로 따라하셔서 2번으로 해서 일을 묘하게 해놨습니다.
대부분의 판본이 1 과 비슷하게 안보이는 것으로 했는데 왕건군은
삼한백제론도,또 백잔과
잔의 구분도 모르는 분이라서 殘兵을 집어 넣었나 봅니다만(자신의 견해는
물론 확인했다라는거죠).
만일 殘兵이 그 자리에 정말 있다면 그 한글자로 삼한백제론에는 치명적입니다.
잔병이 있을 곳이 못되는 아리수 건너편이기 때문이죠,(물론 전혀 아닌건 아니지만).
저는 그 자리에 잔병이 있을리 없을거라고 봅니다.
따라서 빈 자리에도 殘兵이 있을리 없겠죠....
김 성호 선생님은 생각이 비류백제(이번에 구다라로 개칭)에 굳어있지만 ,
그래도 일찌기 잔과 백잔을 구분해서 비문을 해석했던 분인데도
그 부분에 殘兵歸穴 을 태연하게 놓아서 왕건군을 따라 갔습니다.
자연과학계라면 퇴출감이죠..
별것아닌 한자라도 꼼꼼히 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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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었는데 제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그부분을 김 성호 선생님의 의견을 여쭐 기회가 있어 말씀 올렸는데,
구다라군대가 덤벼드니 광개토대왕이 위협과 노기로 붉은 얼굴을 하고
한강을 건너가 특공대를
보내 한성을 압박할새 (뒤쫐던)구다라군은 (금강쪽으로)돌아가게되니
쉽게 한성을 포위했다........라고 해석하시더군요....
이렇게 본다면 그안보이는 자리에 왕건군 주장대로 殘兵歸穴 있다쳐도
삼한백제론에 별무영향이겠습니다.
저는 한강을 건너가서 성을 압박하는데 잔병이 도망가니라고 봐서
한성 주변에 잔병이 올 확률이 적다라고 봐서 틀렸다고 했는데
제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비문해석이 왜 이리 어려운가요.....






광개토왕비문에는 많은 탁본이 있고 또 더 많은 판독이 있습니다. 남들은 보지 못했는데 자신은 보았거나, 심지어 수백년 전 글자가 지워지기 전의 글자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탁본 중에 왕건군 탁본(실제로는 주운대 탁본임)도 그 하나일 뿐입니다. 가장 가치가 있다면 초기 탁본이겠지요.
*초기 탁본: 19세기 회바르기 전의 탁본 - 가장 인정받는 탁본
*중기 탁본: 회 바른 이후의 탁본 - 대부분 탁본
*후기 탁본: 바른 회가 떨어져나간 후의 최근 탁본 - 중국정부에서 독자적으로 뜬 탁본으로 왕건군탁본은 여기에 들어감
제가 "삼한사의 재조명"에 적어놓은 판독은 당시 입수 가능한, 나름대로 인정받는 탁본들을 다 비교 분석한 것으로서 어디다 내놓아도 자신있는 판독입니다. 책임질 수 없는 글자는 적어놓지 않았습니다. 왕건군 판독의 문제점은 글자를 보고 뜻을 추정해야하는데 뜻을 먼저 추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글자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거꾸로입니다.
제 책에 '而잔주'(왕건군 판독)'와 '百잔주'(대부분 판독)의 비교를 통해 왕건군이 글자 잘못 읽는 것을 보여드린 것 같은데 또 하나 예를 들면 남들이 대부분 '首공취'라고 있는데 자신은 '南공취'라고 읽습니다. 이잔주와 백잔주에서도 그렇고, 남공취와 수공취에서도 그런데 글자가 首자보다 南자에 가깝기 때문에 南자라고 한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首자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비록 판독은 首자와 비슷하지만 문맥을 보아서 南자로 읽는다면 이는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글자 그대로의 판독이 먼저고 해석이 나중에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판독과 논리가 안 맞는다고 해서 판독된 글자를 고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혹시 자신의 논리에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비문을 보면 잔국을 토벌하고 58성의 이름을 적어넣었는데 영락 5년 이전에 공취한 한강북부 18성에 영락 6년에 공취한 금강유역 및 한강남부 40성입니다. 지도를 보면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을 함께 포함하고 있어 삼한백제(잔)에 한성백제(백잔)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강유역에서 추격해오는 잔병을 만나던, 한강유역을 지키고 있던 잔병을 만나던, 판독을 잔병이라고해도 내용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