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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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37
첫 번째 질문. 삼국사기는 장수왕의 이름을 거련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삼국유사는 장수왕의 이름을 신련이라고 하네요. 중국 사서들은 장수왕의 이름을 련이라고 하고요. 대체 뭐가 맞나요?
두 번째 질문. 중국 사서들을 보면 고구려왕 궁(태조왕)을 엄청 나쁘게 묘사했거든요. 중국인들이 태조왕을 얼마나 두려워했으면 그런 식으로 썼는지.... 그런데 네티즌 고대사에서는 차대왕이 짱이고 태조왕은 그저 그런 존재(?)로 써있네요. 동천왕 역시 중국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서들을 보면 동천왕을 위궁이라고 써있습니다. 차대왕도 물론 영웅이지만 태조왕도 차대왕 못지 않은 영웅 아닌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태조왕은 직접 수많은 전쟁을 벌였고 그 선봉장으로 차대왕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질문. 네티즌 고대사와 삼한사의 재조명에서는 안나왔는데 태조왕은 자연사인가요? 아니면 차대왕(또는 신대왕)에게 시해되었나요?






태조왕이나 차대왕이나 신대왕이나 모두 대왕의 시호를 받은 분들입니다. 누구를 따질 것 없이 다 훌륭하십니다. 제가 '네티즌 고대사'에서 차대왕을 강조한 것은 다른 두 대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아쉬운 사람이 있다면 백제의 '진사왕'입니다. 새로 쓰는 책에서는 근초고왕에게 버금가는 군왕으로 나올 것입니다.
태조왕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든다면 마한과 협력하여 요서에서 후한과 전쟁한 것입니다. 고구려의 왕통이 바뀌고 백제와 화해하였습니다. 당시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도 이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은 당시 한반도 북부를 누가 통치하고 있었느냐와 관련하어 아주 중요합니다. 대동강유역의 낙랑사 공부하는 사람은 이 기록을 반드시 알야야 합니다.
당시 백제가 마한만 접수한 상태라서 변한군이나 진한군은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마한군만 나온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만일 3세기 이후에 요서에 갔다면 그때는 진한군이나 변한군도 출전하였을 것입니다.
태조왕이 자연사인가 아닌가는 모릅니다. 단, 차대왕에게 국권을 넘겨줄 때 태조왕이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