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와 다르게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흥미를 전제로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이므로 나는 드라마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우연히 어느 날 대왕세종을 보게 되었다. 대마도인들이 부산지역의 상거래를 혼란시키자 세종대에 군권을 잡고 있던 태종이 군대를 보내 대마도를 정벌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우리 어린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도 태종이나 세종의 대외업적으로 나온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보인다. 한국에서의 거리가 일본에서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고대에 임나가야의 영역이었고, 한일 사이에 놓인 정거장 같은 곳이라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곳으로 문화의 중첩지대였다. 임나가야 멸망 이후에도 한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등거리 외교를 하던 정치적으로도 중립적인 곳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대마도인들이 모두 일본 옷을 입고 일본말을 쓰는데 당시에 과연 그랬을까? 교역을 많이 하면 그 교역대상의 말과 풍습을 닮아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대마도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교역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이다. 따라서 대마도인들이 식량을 구해 일본열도의 절반 거리에 위치한 가까운 한반도로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교역이란 것이 한국인보다 그들에게는 훨씬 절박한 일이었다. 공정한 교역을 하면 물론 좋지만 공정한 교역으로 그들이 과연 먹고 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그들이 일으킨 소란은 조선정부에서 보면 통치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이 경우 조선정부가 취할 방도는 2가지이다. 첫번째 이들을 토벌하고 교역을 금지하여 그들의 교역상대를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로 돌리는 것이다. 두번째는 손해는 좀 보더라도 항구를 더 개방하고 교역을 도와주어 최소한도는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고려말에 왜인들의 혼란을 목격했으며, 새로 세운 나라의 통치질서에 도전하는 행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했던 태종을 비롯한 조선 지배층에게 두번째를 선택하기란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조선정부는 첫번째를 선택했으며 대마도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한반도 대신 두배나 먼 일본별도를 교역대상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우기 당시의 일본정부는 조선만큼의 중앙집권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대마도인들이 와서 행패를 부린다 해도 이를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 일본에서 교역을 하려면 일본말을 배우고 일본풍습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대마도는 행정구역상 일본이 되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지만, 만일 조선 정부가 당시에 두번째를 선택했다면 대마도는 혹시 조선 이후 경상도 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