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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신라금관 기원론에 관한 새로운 책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19691 2008.05.29 21:33:17 (*.68.174.111) 신라사0 Comments 111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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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의 형태가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에서 비롯됐다는 이른바 ‘북방 기원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연구서가 동시에 나왔다.
(1) 임재해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는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에서, (2)박선희 상명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 금관의 역사를 밝힌다’(이상 지식산업사)를 통해 “신라 금관은 북방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민족 고유의 창작품”이라고 말했다. ‘신라 금관은 시베리아의 샤먼들이 썼던 사슴뿔 모양의 모자를 본떠 만들었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임 교수는 우선 사슴뿔 모양을 따라했다는 설에 대해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은 대부분 5개며 더러 3개인 것도 있으나 2개인 경우는 전혀 없으므로 사슴뿔 한 쌍의 모양을 장식한 시베리아 무관(巫冠)과는 모양부터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신라금관의 세움장식 끝부분이 ‘♤’ 모양으로 처리된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움(새순)’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세움장식을 사슴뿔 모양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은 ‘♤’모양과 사슴뿔의 연관성을 밝히지 못해 아예 해석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의 이런 연구는 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라 금관의 줄기 부분은 김알지가 최초로 발견된 계림(鷄林)의 신성한 나무(신수·神樹)를 형상화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씨계의 왕권 세습이 본격화되던 시기와 신라 금관이 출현하기 시작한 시기는 5세기로 일치하는데 김씨계가 왕권 강화를 위해 시조 신화를 금관에 담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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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이 책 2권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책을 쓰신 분들이 삼국사기가 기록한 금관의 기원에 관한 내용을 책에 언급했는지가 궁금하다. 당사자가 삼국사기를 통하여 4세기 후반에 신라에 출현하는 금관이 어떻다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용하지 않는다면 논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관에 관한 책이라면 삼국사기의 다음 기록을 언급했느냐 안 했느냐갸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크게 가름한다. 또한 삼국사기의 신라 금관기원에 관한 이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서 한국고대사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신라 금관의 기원에 관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
*흘해이사금 35년, 봄 2월, 왜국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했으나 딸이 이미 출가하였다고 하여 거절하였다.
-> 중기 신라의 시작을 알림
* 삼한사의 재조명
제18장, 중기신라로의 전환
제19장, 마립간시대의 개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