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록과 선학(先學)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살펴본 마한 멸망 이후 소국(小國)들의 동맹은 다음과 같다.


- 원(原) 가야인 + 마한 유민 + 변한 (『숭선전지』)


- 서나벌(박씨족) + 마한 왕자를 포함한 마한 유민 (『청주 한씨 족보』․『삼국사기』)


- 용성국(석씨족) + 마한 유민(침미다례의 왕족) (『왕세기』.『삼국유사』와『수서』는 용성국이 마한을 지지했음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함)


- 한성백제(『삼국사기』에 나오는 온조왕의 나라) : 삼한백제의 담로가 되기 전에는 마한 정복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서나벌을 공격하지도 않았으나, 담로가 된 뒤부터는 마한을 지지했던 사로국(서나벌 + 용성국[해상신라])을 공격함
(이 게시판의 글인「▩십제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후(後) 다루왕과 후(後) 기루왕」,「[re]▩부록 - 되살린 십제 왕력」참고. 카테고리는 모두 '백제사'임)


그러니까
서기 1세기의 삼한백제는 마한 유민뿐만 아니라 원 가야인, 변한, 서나벌, 용성국, 한성백제를 '적'으로 돌리고 싸워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원 가야인과 서나벌, 용성국은 과연 서로를 어떻게 대했을까? 삼한백제와 싸우기도 바빴을 상황에서 서로를 적으로 돌렸을 리는 없고, 같은 적(삼한백제)과 싸웠으며, 모두 마한의 제후국이었으므로(『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마한 왕이 신라의 사신에게 "진한과 변한"이 모두 마한의 신하인데도 최근에는 마한에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꾸짖는 구절이 나온다. 이런 불평을 당사자인 진이나 변한의 사신에게 하지 않고 신라의 사신에게 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서나벌도 한 때는 마한의 신하였고, 변한 ․ 진과 마찬가지로 마한에 공물을 바치는 의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숭선전지』에는 마한이 5가야의 종주국이라는 구절과, 가야와 신라가 마한의 왕통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신라의 전신前身인 용성국과 가야도 마한의 신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들은 마한 유민(왕자와 장군 포함)을 매개체로 삼아 서로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