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 여덟 나라가 합세해서 변경을 침범해 왔다. 왕은 태자 나음(내音)과 장군 일벌(一伐)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게 하니 여덟 나라가 모두 항복했는데 이때 물계자(勿稽子)의 군공(軍功)이 제일이었다. 그러나 태자에게
미움을 받아 그 상을 받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물계자에게, "이번 싸움의 공은 오직 당신뿐인데, 상은 당신에게 미치지 않았으니 태자가 그대를
미워함을 그대는 원망하는가"하고 묻자, 물계자는 대답하기를, "나라의 임금이 위에 계신데 인신(人臣)인 태자를 어찌 원망하겠소"하니 그 사람이
"그렇다면 이 일을 왕에게 아뢰는 것이 옳지 않겠소"하니, 그는 말하기를, "공을 자랑하고 이름을 다투며 자기를 나타내고 남을 가리는 것은
지사(志士)의 할 바가 아니오. 힘써 때를 기다릴 뿐이오"하였다.
20년 을미(乙未)에 골포국(骨浦國[지금의 합포合浦]) 등 세 나라 왕이 각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갈화(竭火[굴불屈弗인 듯하니 지금의 울주蔚州])를 침범하자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려 이를 막으니 세 나라가 모두 패했다. 물계자가
죽인 적병이 수십 급이었으나 사람들은 그의 공을 말하지 않았다. 물계자는 그 아내에게 말했다. "내 들으니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환란을 당해서는 몸을 잊어버리며, 절의(節義)를 지켜 사생(死生)을 돌보지 않는 것을 충이라 하였소. 보라(保羅[발나發羅인 듯
하니 지금의 나주羅州])와 갈화(竭火)의 싸움은 진실로 나라의 환란이었고 임금의 위태로움이었소. 그러나 나는 일찍이 자기 몸을 잊고 목숨을 바치는
용맹이 없었으니 이것은 불충(不忠)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오. 이미 불충으로써 임금을 섬겨 그 누(累)가 아버님께 미쳤으니 어찌 효라 할 수
있겠소." 이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문고를 메고서 사체산(師체山[미양未洋])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대나무의 곧은 성벽(性癖)을 슬퍼하고 그것에
비유하여 노래를 짓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비겨서 거문고를 타고 곡조를 짓고 하였다. 그 곳에 숨어 살면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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