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들어가서 숨었고, 그가 가졌던 지팡이는 새로 꾸민 불화(佛畵) 십일면원통상(十一面圓通像) 앞에
있었다.
경흥이 어느날 대궐에 들어가려 하자 시종하는 이들이 동문(東門) 밖에서 먼저 채비를 차리니
말과 안장은 매우 화려하고 신과 갓도 제대로 갖추었으므로 길 가던 사람들은 길을 비켰다. 그 때 거사(居士[혹은 사문沙門이라고도 했다]) 한
사람이 모습은 몹시 엉성한데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등에는 광주리를 지고 와서 하마대(下馬臺) 위에서 쉬고 있는데, 광주리 속을 보니 마른
물고기가 있었다. 시종하는 이가 그를 꾸짖었다. "너는 중의 옷을 입고 어찌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지고 있느냐." 중이 말했다. "산
고기(馬)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있는 것보다 삼시(三市)의 마른 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말을 마치자 일어나 가
버렸다. 경흥은 문을 나오다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쫓게 하니 남산(南山) 문수사(文殊寺) 문밖에 이르러 광주리를 버리고 숨었는데
짚었던 지팡이는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 앞에 있고, 마른 고기는 바로 소나무 껍질이었다. 사자가 와서 고하자 경흥은 이를 듣고 탄식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와서 내가 말타고 다니는 것은 경계한 것이구나." 그 뒤로 경흥은 몸이 마치도록 말을 타지 않았다.
경흥이 뿌린 덕의 향기와 남긴 맛은 중 현본(玄本)이 엮은 삼랑사 비문에 자세히 실려
있다. 일찍이 보현장경(普賢章經)을 보니 미륵보살이 말했다. "나는 내세에는 염부제(閻浮提)에 나서 먼저 석가의 말법(末法) 제자들을 먼저
제도(濟度)할 것이다. 그런데 다만 말탄 비구승(比丘僧)만은 제외시켜서 그들에게는 부처를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찬(讚)해 말한다.
옛 어진 이가 모범은 보인 것은 뜻한 바
많았는데,
어찌하여 자손들은 절차(切磋) 하지
않는가.
마른 고기 등에 진 건 오히려 옳은
일이나,
다음날 용화(龍華) 저버릴 일 어찌
견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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