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pia 삼국유사Home으로
today : 64   total : 131399  통계보기
三國遺事卷第一
紀異 第一 上
古朝鮮 원문국역문
魏滿朝鮮 원문국역문
馬韓 원문국역문
二府 원문국역문
七十二國 원문국역문
樂浪國 원문국역문
北帶方 원문국역문
南帶方 원문국역문
靺鞨 渤海 원문국역문
伊西國 원문국역문
五伽耶 원문국역문
北扶餘 원문국역문
東扶餘 원문국역문
高句麗 원문국역문
卞韓 百濟 원문국역문
辰韓 원문국역문
又四節遊宅 원문국역문
新羅始祖 赫居世王 원문국역문
第二南解王 원문국역문
第三弩禮王 원문국역문
第四脫解王 원문국역문
金閼智 脫解王代 원문국역문
延烏郎 細烏女 원문국역문
未鄒王 竹葉軍 원문국역문
奈勿王 金堤上 원문국역문
第十八實聖王 원문국역문
射琴匣 원문국역문
智哲老王 원문국역문
眞興王 원문국역문
桃花女 鼻荊郞 원문국역문
天賜玉帶 원문국역문
善德王知幾三事 원문국역문
眞德王 원문국역문
金庾信 원문국역문
太宗春秋公 원문국역문
長春郎 罷郎 원문국역문
三國遺事卷第二
紀異 第二 下
文虎王法敏 원문국역문
萬波息笛 원문국역문
孝昭王代 竹旨郞 원문국역문
聖德王 원문국역문
水路夫人 원문국역문
孝成王 원문국역문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원문국역문
惠恭王 원문국역문
元聖大王 원문국역문
早雪 원문국역문
興德王 鸚 원문국역문
神武大王 閻長 弓巴 원문국역문
四十八景文大王 원문국역문
處容郎 望海寺 원문국역문
眞聖女大王 居陁知 원문국역문
孝恭王 원문국역문
景明王 원문국역문
景哀王 원문국역문
金傅大王 원문국역문
南扶餘 前百濟 北扶餘已見上 원문국역문
武王 원문국역문
後百濟 甄萱 원문국역문
駕洛國記 원문국역문
居登王 원문국역문
麻品王 원문국역문
居叱彌王 원문국역문
伊尸品王 원문국역문
坐知王 원문국역문
吹希王 원문국역문
銍知王 원문국역문
鉗知王 원문국역문
仇衡王 원문국역문
三國遺事卷第三
興法第三
順道肇麗 원문국역문
難陁闢濟 원문국역문
阿道基羅 원문국역문
原宗興法 厭髑滅身 원문국역문
法王禁殺 원문국역문
寶藏奉老 普德移庵 원문국역문
東京興輪寺金堂十聖 원문국역문
塔像第四
迦葉佛宴坐石 원문국역문
遼東城育王塔 원문국역문
金官城婆娑石塔 원문국역문
高麗靈塔寺 원문국역문
皇龍寺丈六 원문국역문
皇龍寺九層塔 원문국역문
皇龍寺鐘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원문국역문
靈妙寺丈六 원문국역문
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원문국역문
生義寺石彌勒 원문국역문
興輪寺壁畵普賢 원문국역문
三所觀音 衆生寺 원문국역문
栢栗寺 원문국역문
敏藏寺 원문국역문
前後所將舍利 원문국역문
彌勒仙花 未尸郎 眞慈師 원문국역문
南白月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원문국역문
芬皇寺千手大悲 盲兒得眼 원문국역문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원문국역문
魚山佛影 원문국역문
臺山五萬眞身 원문국역문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원문국역문
臺山月精寺五類聖衆 원문국역문
南月山 원문국역문
天龍寺 원문국역문
鍪藏寺彌陁殿 원문국역문
伯嚴寺石塔舍利 원문국역문
靈鷲寺 원문국역문
有德寺 원문국역문
五臺山文殊寺石塔記 원문국역문
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圓光西學 원문국역문
寶壤梨木 원문국역문
良志使錫 원문국역문
歸竺諸師 원문국역문
二惠同塵 원문국역문
慈藏定律 원문국역문
元曉不覊 원문국역문
義湘傳敎 원문국역문
虫也福不言 원문국역문
眞表傳簡 원문국역문
關東楓岳鉢淵藪石記 원문국역문
勝詮髑髏 원문국역문
心地繼祖 원문국역문
賢瑜珈 海華嚴 원문국역문
三國遺事 卷第五
神咒 第六
密本摧邪 원문국역문
惠通降龍 원문국역문
明朗神印 원문국역문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 원문국역문
郁面婢念佛西昇 원문국역문
廣德 嚴莊 원문국역문
憬興遇聖 원문국역문
眞身受供 원문국역문
月明師兜率歌 원문국역문
善律還生 원문국역문
金現感虎 원문국역문
融天師彗星歌 眞平王代 원문국역문
正秀師救氷女 원문국역문
避隱 第八
朗智乘雲 普賢樹 원문국역문
緣會逃名 文殊岾 원문국역문
惠現求靜 원문국역문
信忠掛冠 원문국역문
包山二聖 원문국역문
永才遇賊 원문국역문
勿稽子 원문국역문
迎如師 원문국역문
布川山 五比丘 景德王代 원문국역문
念佛師 원문국역문
孝善 第九
眞定師孝善雙美 원문국역문
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 원문국역문
向得舍知割股供親 景德王代 원문국역문
孫順埋兒 興德王代 원문국역문
貧女養母 원문국역문
跋文 원문국역문
개요
목록 원문국역문
해제
범례
home三國遺事 卷第四 > 義解 第五 > 義湘傳敎
first prev next last
원문국역문 국역원문비교보기
http://www.histopia.net/url.php?ID=yusa_05_008r ::: URL

의상전교(義湘傳敎)

법사(法師) 의상(義湘)의 아버지는 한신(韓信)이요,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나이 29세에 서울 황복사(皇福寺)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중국으로 가서 부처의 교화(敎化)를 보려 하여 드디어 원효(元曉)와 함께 요동(遼東) 변방으로 갔는데, 여기에서 변방의 순라군(巡邏軍)이 간첩(間諜)으로 잡아 가둔 지 수십일 만에 겨우 풀려 돌아왔다[이 사실은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의상본전義湘本傳≫과 원효대사元曉大師의 행장行狀에 있다]. 영휘(永徽) 초년에 마침 당나라 사신이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자가 있으므로 그 배를 타고 중국에 들어갔다. 처음 양주(揚州)에 머물렀는데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의상을 청해다가 관청에 머무르게 하고 대접하는 것이 매우 성대했다. 그후 얼마 안 되어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 가서 지엄(智儼)을 뵈었는데 지엄은 그 전날 밤 꿈에, 큰 나무 하나가 해동(海東)에서 났는데 가지와 잎이 널리 퍼져서 중국에까지 와서 덮였고, 가지 위에는 봉황새의 집이 있는데, 올라가서 보니 마니보주(摩尼寶珠) 하나가 있어 그 광명(光明)이 먼 곳에까지 비쳤다. 꿈에서 깨자 놀랍고 이상스러워서 집을 깨끗이 소제하고 기다리는데 의상이 오므로 지엄은 특별한 예로 그를 맞아 조용히 말했다. "내가 꾼 어젯밤 꿈은 그대가 내게 올 징조였구려." 이에 입실(入室)할 것을 허락하니 의상은 ≪화엄경(華嚴經)≫의 깊은 뜻을 세밀한 곳까지 해석했다. 지엄은 영질(영質)을 만난 것을 기뻐하여 새로운 이치를 터득해 내니 이야말로 깊이 숨은 것을 찾아내서 남천(藍천)이 그 본색(本色)을 잃은 것이라 하겠다. 이때 이미 본국의 승상(丞相) 김흠순(金欽純[혹은 인문仁問])·양도(良圖) 등이 당나라에 갇혀 있었는데 고종(高宗)이 장차 크게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 하자 흠순 등은 몰래 의상을 권하여 먼저 돌아가게 하여, 함형(咸亨) 원년 경오(庚午[670])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이 일을 본국 조정에 알리자 신인종(神印宗)의 고승(高僧) 명랑(明朗)에게 명하여 밀단(密壇)을 가설(假說)하고 비법(秘法)으로 기도해서 국난(國難)을 면할 수 있었다.

의봉(儀鳳) 원년(676)에 의상은 태백산(太伯山)에 돌아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고 대승(大乘)을 폈더니 영험이 많이 나타났다. 종남문인(終南門人) 현수(賢首)가 ≪수현소(搜玄疏)≫를 지어서 부본(副本)을 의상에게 보내고, 아울러 은근한 뜻이 담긴 편지를 올렸다.

서경(西京) 숭복사(崇福寺) 중 법장(法藏)은 해동(海東) 신라 화엄법사(華嚴法師)의 시자(侍者)에게 글을 올립니다. 한번 작별한 지 20여 년이 되니 사모하는 정성이 어찌 마음 속에서 떠나겠습니까. 게다가 연기와 구름이 1만 리나 되고 바다와 육지가 1,000겹이나 쌓였으니 이 몸이 다시 뵙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며, 회포와 그리움을 어찌 다 말하오리까. 전생(前生)에 인연을 같이 했고, 금세(今世)에 학업을 함께 닦았기 때문에 이 과보(果報)를 얻어서 함께 대경(大經)에 목욕하고, 선사(先師)의 특별한 은혜로 깊은 경전(經典)의 가르침을 입게 된 것입니다. 우러러 듣건대, 상인(上人)께서는 고향에 돌아가신 후로 ≪화엄경(華嚴經)≫을 강연해서 법계(法界)의 무애(無애)한 연기(緣起)를 드날려, 겹겹의 제망(帝網)으로 불국(佛國)을 새롭게 하여 중생(衆生)에게 이익을 주심이 크고 넓다 하오니 기쁜 마음이 더해집니다. 이것으로써 여래(如來)가 돌아가신 후에 불교를 빛내고 법륜(法輪)을 다시 굴려 불법(佛法)을 오래 머물게 한 분은 오직 법사(法師)뿐임을 알겠습니다. 법장(法藏)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 하나도 이루는 것이 없고 주선하는 일이 더욱 적사오니, 우러러 이 경전(經典)을 생각하니 선사(先師)께 부끄러울 뿐입니다. 오직 분수에 따라 받은 바를 잠시도 놓칠 수 없으니 이 업(業)에 의지하여 내세(來世)의 인연을 맺기를 원할 뿐입니다. 다만 스님의 장소(章疏)는, 뜻은 풍부하지만 글이 간결하여 후세(後世)사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님의 깊은 말씀과 미묘한 뜻을 기록하여 ≪의기(義記)≫를 이루었습니다. 요새 이것을 승전법사(勝詮法師)가 베껴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그 지방에 전할 것입니다. 하오니 상인(上人)께서는 그 잘잘못을 자세히 검토하셔서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마땅히 내세(來世)에서는 사신수신(捨身受身)하여 함께 노사나불(盧舍那佛)의 이와 같은 끝이 없는 묘법(妙法)을 듣고, 이와 같은 무량(無量)한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원행(願行)을 수행(修行)한다면 나의 남은 악업(惡業)은 하루아침에 떨어질 것입니다. 바라건대 상인(上人)께서는 옛날의 일을 잊지 마시고 제취(諸趣) 중에서 정도(正道)로써 가르쳐 주시옵소서. 인편(人便)이 있으면 때때로 안부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갖추지 못합니다.[이 글은 ≪대문류大文類≫에 실려 있음]

의상은 이에 영(令)을 내려 열 곳 절에서 불교를 전하니 태백산의 부석사, 원주(原州)의 비마라사(毗摩羅寺), 가야산(伽倻山)의 해인사(海印寺), 비슬산(毗瑟山)의 옥천사(玉泉寺), 금정산(金井山)의 범어사(梵魚寺), 남악(南嶽)의 화엄사(華嚴寺) 등이 이것이다. 또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과 ≪약소(略疏)≫를 지어서 일승(一乘)의 요점을 모두 기록하여 천 년의 본보기가 되게 하였으니 이를 여러 사람이 다투어 소중히 지녔다. 이 밖에는 저술한 것이 없었으니 온 솥의 고기맛을 알려면 한 점의 살코기로도 족한 것이다.

≪법계도(法界圖)≫는 총장(總章) 원년 무진(戊辰[668])에 완성되었으며, 이 해에 지엄(智儼)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마치 공자(孔子)가 '기린을 잡았다'는 구절에서 붓을 끊은 것과 같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의상은 금산보개(金山寶蓋)의 화신(化身)이라 하는데 그의 제자에는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勳)·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 10명의 고승들이 영수(領首)가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성(亞聖)들이며 각각 전기(傳記)가 있다.

오진은 일찍이 하가산(下柯山) 골암사(골암寺)에 살면서 밤마다 팔을 뻗쳐서 부석사 석등(石燈)에 불을 켰다. 지통은 ≪추동기(錐洞記)≫를 지었는데, 그는 대개 친히 의상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묘한 말이 많다. 표훈은 일찍이 불국사(佛國寺)에 살았으며 항상 천궁(天宮)을 왕래했다. 의상이 황복사(皇福寺)에 있을 때 여러 무리들과 함께 탑을 돌았는데, 항상 허공을 밟고 올라가 층계는 밟지 않았으므로 그 탑에는 사리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 무리들도 층계에서 3척이나 떠나 허공을 밟고 돌았기 때문에 의상은 그 무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반드시 괴이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가르치지 못한다." 이 나머지는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본전(本傳)과 같다.

찬(讚)해 말한다.

덤불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 연기와 티끌 무릅쓰니,
지상사(至相寺) 문이 열려 귀한 손님 접대했네.
화엄(華嚴)을 캐다가 고국(故國)에 심었으니,
종남산(終南山)과 태백산(太伯山)이 함께 봄 맞았네.

digitized by jikji. HiSTOPIA™
도움말
오류신고
Top으로
Copyright ⓒ 2008-2019 HISTOPIA™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Sungjee 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