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가에 있는 석탑(石塔)은 대개 신라 사람이 세운 것이다. 만든 제도가 비록
순박하여 교묘하지는 못하지만 자못 영험이 있어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사실을 여러 옛 노인에게서 들었는데
이러하다. "옛날에 연곡현(連谷縣)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탑 하나가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그림자를 보자 물속 고기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난다. 이 때문에 어부(漁夫)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그림자를 따라서 찾아가니 이 탑이었다. 이에 도끼를 들어 그 탑을 쳐부수고 갔는데, 지금 이 탑의 네 귀퉁이가
모두 떨어진 것은 이 까닭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라서 탄식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그 탑의 위치가 조금
동쪽으로 당겨져서 중앙에 있지 않은 것을 괴상히 여겨서 현판 하나를 쳐다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비구(比丘) 처현(處玄)이
일찍이 이 절에 있으면서 탑을 뜰 가운데로 옮겼더니 그 후 30여 년 동안 잠잠히 아무 영험도 없었다. 일자(日者)가 터를 구하려고
여기에 와서 탄식하기를 '이 뜰 가운데는 탑을 세울 곳이 아닌데 어찌해서 동쪽으로 옮기지 않는가'했다. 이에 여러 중들이 깨닫고 다시
옛 자리로 옮겼으니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나는 괴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부처의 위신(威神)이 그 자취를 나타내어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이같이 빠른 것을 보고서 어찌 불자(佛子)가 된 사람으로서 잠자코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정풍(正豊) 원년
병자(丙子[1156]) 10월 일에 백운자(白雲子)는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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