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불화광(彌陀佛火光) 후기(後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중아찬(重阿飡)
김지전(金侍全)은 일찍이 상의(尙衣)로서 임금을 모시고 또 집사시랑(執事侍郞)으로 있다가 67세에 벼슬을 도로 바치고 집에서 한가로이 지냈다.
이때 국주(國主) 대왕(大王)과 이찬(伊飡) 개원(愷元), 죽은 아버지 인장(仁章) 일길간(一吉干), 죽은 어머니, 죽은 동생,
소사(小舍) 양성(梁誠), 사문(沙門) 현도(玄度), 죽은 아내 고로리(古老里), 죽은 누이동생 고파리(古巴里), 또 아내 아호리(阿好里) 등을
위해서 감산(甘山)의 장전(莊田)을 내놓아 절을 세웠다. 또 석미타(石彌陀) 하나를 만들어 죽은 아버지 인장 일길간을 위하여
모셨는데, 그가 고인이 되자 동해유우 변산야(東海攸友 邊散也)라 했다."[제계帝系를 상고해 보면, 김개원金愷元은 태종太宗 김춘추金春秋의 여섯째
아들 개원각간愷元角干이며, 문희文熙가 낳은 이다. 성지전誠志全은 인장仁章 일길간一吉干의 아들이다. 동해유우東海攸友는 필시
법민왕法敏王을 동해東海에 장사지낸 것을 말한 것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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