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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卷第一
紀異 第一 上
古朝鮮 원문국역문
魏滿朝鮮 원문국역문
馬韓 원문국역문
二府 원문국역문
七十二國 원문국역문
樂浪國 원문국역문
北帶方 원문국역문
南帶方 원문국역문
靺鞨 渤海 원문국역문
伊西國 원문국역문
五伽耶 원문국역문
北扶餘 원문국역문
東扶餘 원문국역문
高句麗 원문국역문
卞韓 百濟 원문국역문
辰韓 원문국역문
又四節遊宅 원문국역문
新羅始祖 赫居世王 원문국역문
第二南解王 원문국역문
第三弩禮王 원문국역문
第四脫解王 원문국역문
金閼智 脫解王代 원문국역문
延烏郎 細烏女 원문국역문
未鄒王 竹葉軍 원문국역문
奈勿王 金堤上 원문국역문
第十八實聖王 원문국역문
射琴匣 원문국역문
智哲老王 원문국역문
眞興王 원문국역문
桃花女 鼻荊郞 원문국역문
天賜玉帶 원문국역문
善德王知幾三事 원문국역문
眞德王 원문국역문
金庾信 원문국역문
太宗春秋公 원문국역문
長春郎 罷郎 원문국역문
三國遺事卷第二
紀異 第二 下
文虎王法敏 원문국역문
萬波息笛 원문국역문
孝昭王代 竹旨郞 원문국역문
聖德王 원문국역문
水路夫人 원문국역문
孝成王 원문국역문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원문국역문
惠恭王 원문국역문
元聖大王 원문국역문
早雪 원문국역문
興德王 鸚 원문국역문
神武大王 閻長 弓巴 원문국역문
四十八景文大王 원문국역문
處容郎 望海寺 원문국역문
眞聖女大王 居陁知 원문국역문
孝恭王 원문국역문
景明王 원문국역문
景哀王 원문국역문
金傅大王 원문국역문
南扶餘 前百濟 北扶餘已見上 원문국역문
武王 원문국역문
後百濟 甄萱 원문국역문
駕洛國記 원문국역문
居登王 원문국역문
麻品王 원문국역문
居叱彌王 원문국역문
伊尸品王 원문국역문
坐知王 원문국역문
吹希王 원문국역문
銍知王 원문국역문
鉗知王 원문국역문
仇衡王 원문국역문
三國遺事卷第三
興法第三
順道肇麗 원문국역문
難陁闢濟 원문국역문
阿道基羅 원문국역문
原宗興法 厭髑滅身 원문국역문
法王禁殺 원문국역문
寶藏奉老 普德移庵 원문국역문
東京興輪寺金堂十聖 원문국역문
塔像第四
迦葉佛宴坐石 원문국역문
遼東城育王塔 원문국역문
金官城婆娑石塔 원문국역문
高麗靈塔寺 원문국역문
皇龍寺丈六 원문국역문
皇龍寺九層塔 원문국역문
皇龍寺鐘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원문국역문
靈妙寺丈六 원문국역문
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원문국역문
生義寺石彌勒 원문국역문
興輪寺壁畵普賢 원문국역문
三所觀音 衆生寺 원문국역문
栢栗寺 원문국역문
敏藏寺 원문국역문
前後所將舍利 원문국역문
彌勒仙花 未尸郎 眞慈師 원문국역문
南白月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원문국역문
芬皇寺千手大悲 盲兒得眼 원문국역문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원문국역문
魚山佛影 원문국역문
臺山五萬眞身 원문국역문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원문국역문
臺山月精寺五類聖衆 원문국역문
南月山 원문국역문
天龍寺 원문국역문
鍪藏寺彌陁殿 원문국역문
伯嚴寺石塔舍利 원문국역문
靈鷲寺 원문국역문
有德寺 원문국역문
五臺山文殊寺石塔記 원문국역문
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圓光西學 원문국역문
寶壤梨木 원문국역문
良志使錫 원문국역문
歸竺諸師 원문국역문
二惠同塵 원문국역문
慈藏定律 원문국역문
元曉不覊 원문국역문
義湘傳敎 원문국역문
虫也福不言 원문국역문
眞表傳簡 원문국역문
關東楓岳鉢淵藪石記 원문국역문
勝詮髑髏 원문국역문
心地繼祖 원문국역문
賢瑜珈 海華嚴 원문국역문
三國遺事 卷第五
神咒 第六
密本摧邪 원문국역문
惠通降龍 원문국역문
明朗神印 원문국역문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 원문국역문
郁面婢念佛西昇 원문국역문
廣德 嚴莊 원문국역문
憬興遇聖 원문국역문
眞身受供 원문국역문
月明師兜率歌 원문국역문
善律還生 원문국역문
金現感虎 원문국역문
融天師彗星歌 眞平王代 원문국역문
正秀師救氷女 원문국역문
避隱 第八
朗智乘雲 普賢樹 원문국역문
緣會逃名 文殊岾 원문국역문
惠現求靜 원문국역문
信忠掛冠 원문국역문
包山二聖 원문국역문
永才遇賊 원문국역문
勿稽子 원문국역문
迎如師 원문국역문
布川山 五比丘 景德王代 원문국역문
念佛師 원문국역문
孝善 第九
眞定師孝善雙美 원문국역문
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 원문국역문
向得舍知割股供親 景德王代 원문국역문
孫順埋兒 興德王代 원문국역문
貧女養母 원문국역문
跋文 원문국역문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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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범례
home三國遺事 卷第三塔像 第四 > 臺山五萬眞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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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臺山) 오만진신(五萬眞身)

산중에 있는 고전(古傳)을 상고해 보면 이렇게 말했다. "이 산을 진성(眞聖), 즉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살던 곳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자장법사(慈藏法師)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법사가 중국 오대산(五臺山)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보고자 하여 신라 선덕왕(善德王) 대인 정관(貞觀) 10년 병신(丙申[636, ≪당승전唐僧傳≫에서는 12년이라고 했지만 여기에서는 ≪삼국본사三國本史≫에 따른다])에 당(唐)나라로 들어갔다. 처음에 중국 태화지(太和池) 가의 돌부처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있는 곳에 이르러 공손히 7일 동안 기도했더니, 꿈에 갑자기 부처가 네 구(句)의 게(偈)를 주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서도 그 네 구의 글은 기억할 수가 있으나 모두가 범어(梵語)여서 그 뜻을 전혀 풀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중 하나가 붉은 비단에 금색(金色) 점이 있는 가사(袈裟) 한 벌과 부처의 바리때 하나와 부처의 머리뼈 한 조각을 가지고 법사(法師)의 곁으로 와서는, 어찌해서 수심에 싸여 있는가 하고 물으니 이에 법사는 대답한다. "꿈에 네 구의 게(偈)를 받았으나 범어로 되어 있어서 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은 그 글을 번역하여 말했다. "가라파좌낭(呵라婆佐낭)이란 일체의 법을 깨달았다는 말이요, 달예치구야(達예치구야)란 본래의 성품은 가진 바 없다는 말이요, 낭가희가낭(낭伽희伽낭)이란 이와 같이 법성(法性)을 해석(解釋)한다는 말이요, 달예노사나(達예盧舍那)란 노사나불(盧舍那佛)을 곧 본다는 말입니다." 말을 마치자 자기가 가졌던 가사 등 물건을 법사에게 주면서 부탁했다. "이것은 본사(本師) 석가세존(釋迦世尊)이 쓰시던 도구(道具)이니 그대가 잘 보호해 가지십시오." 그는 또 말했다. "그대의 본국의 동북방 명주(溟州) 경계에 오대산(五臺山)이 있는데 1만의 문수보살이 항상 그곳에 머물러 있으니 그대는 가서 뵙도록 하시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법사(法師)는 두루 보살(菩薩)의 유적(遺跡)을 찾아 보고 본국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태화지(太和池)의 용이 현신(現身)해서 재를 청하고 7일 동안 공양하고 나서 법사(法師)에게 말한다. "전일에 게(偈)를 전하던 늙은 중이 바로 진짜 문수보살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또 절을 짓고 탑을 세울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은 별전(別傳)에 자세히 실려 있다. 법사는 정관(貞觀) 17년(643)에 이 강원도 오대산(五臺山)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보려 했으나 3일 동안이나 날이 어둡고 그늘져서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가 다시 원령사(元寧寺)에 살면서 비로소 문수보살을 뵈었다고 하였다. 뒤에 칡덩굴이 서려 있는 곳으로 갔는데, 지금의 정암사(淨岩寺)가 바로 이곳이다[이것도 역시 별전別傳에 실려 있다].

그 후 두타(頭陀) 신의(信義)는 범일대사(梵日大師)의 제자로서 이 산을 찾아 자장법사(慈藏法師)가 쉬던 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가 죽은 후에는 암자도 역시 오랫 동안 헐어져 있었는데, 수다사(水多寺)의 장로(長老) 유연(有緣)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니 지금의 월정사(月精寺)가 바로 이것이다.

자장법사가 신라로 돌아왔을 때 정신대왕(淨神大王)의 태자(太子) 보천(寶川)·효명(孝明) 두 형제[≪국사國史≫를 살펴보면 신라에는 정신淨神·보천寶川·효명孝明의 세 부자父子에 대한 명문明文이 없다. 그러나 이 기록의 하문下文에, 신룡神龍 원년에 터를 닦고 절을 세웠다고 했으니 신룡神龍 원년은 곧 성덕왕聖德王 즉위 4년 을사乙巳다. 왕王가의 이름은 흥광興光이요, 본명本名은 융기隆基이니 신문왕神文王의 둘째아들이다. 성덕聖德의 형 효조孝照는 이름이 이공理恭이니 혹은 홍천洪川이라고 했다. 이는 또 신문왕神文王의 아들이다. 신문왕神文王의 이름은 정명政明이요, 자는 일조日照니 정신淨神은 아마 정명政明 신문神文이 잘못 전해진 것인 듯싶다. 효명孝明은 효조孝照, 혹은 소昭의 잘못 전해진 것인 듯하다. 이 기록에 효명孝明이 즉위한 것만 말하고 신룡神龍 연간에 터를 닦고 절을 세웠다고 하는 것은 또한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룡神龍 연간에 절을 세운 이는 바로 성덕聖德이다]가 하서부(河西府[지금의 명주溟州에 또한 하서군河西郡이 있으니 이것이다. 또는 하곡현河曲縣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울주蔚州라 하나 잘못이다])에 와서 세헌각간(世獻角干)의 집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큰 고개를 지나 각각 무리 1,000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닿아 여러 날 유람하는데, 갑자기 어느날 밤에 두 형제가 속세(俗世)를 벗어날 뜻을 남몰래 약속하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망하여 오대산(五臺山[≪고기古記≫에는, 태화太和 원년元年 무신戊申 8월 초에 왕王이 산속에 숨었다고 했으나 아마 이것은 잘못인 듯싶다. 상고해 보건대, 효조孝照를 효소孝昭라고도 했다. 천수天授 3년 임진壬辰에 즉위했는데 이때 나이 16세였고, 장안長安 2년 임인壬寅에 죽었으니 나이 26세였고, 성덕왕聖德王이 이 해에 즉위했으니 나이 22세였다. 만일 태화太和 원년이 무신戊申이라면 효조孝照가 즉위한 갑진甲辰년보다 이미 45년이나 지났으니 즉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다. 이것으로 이 글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것을 취하지 않는다])에 들어가니 그를 시중들던 사람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두 태자(太子)가 산 속에 이르자 푸른 연꽃이 갑자기 땅 위에 피므로 형 태자(太子)가 여기에 암자를 짓고 머물러 살았으니 이곳을 보천암(寶川庵)이라 했다. 여기에서 동북쪽으로 600여 보(步)를 가니 북쪽 대(臺)의 남쪽 기슭에 역시 푸른 연꽃이 핀 곳이 있으므로 아우 태자(太子) 효명(孝明)이 또 암자를 짓고 살면서 각각 부지런히 업(業)을 닦았다.

어느날 형제가 함께 다섯 봉우리에 예(禮)를 하러 올라가니 동쪽 대(臺) 만월산(滿月山)에는 1만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진신(眞身)이 나타나 있고, 남쪽 대(臺) 기린산(麒麟山)에는 팔대보살(八大菩薩)을 우두머리로 한 1만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나타나 있고, 서쪽 대(臺)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우두머리로 한 1만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나타나 있고, 북쪽 대(臺) 상왕산(象王山)에는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5백의 대아라한(大阿羅漢)이 나타나 있고, 중앙의 대(臺) 풍로산(風盧山)은 또 지령산(地靈山)이라고도 하는데,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우두머리로 한 1만의 문수보살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이와 같은 5만 보살의 진신에게 일일이 예를 했다. 날마다 이른 아침에는 문수보살이 지금의 상원(上院)인 진여원(眞如院)에 이르러 서른 여섯 가지의 모양으로 변하여 나타났다. 혹은 부처의 얼굴 모양이 되고 어떤 때는 보주(寶珠) 모양이 되고, 또 혹은 부처의 눈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부처의 손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보탑(寶塔)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만불두(萬佛頭)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만등(萬燈)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교(金橋)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고(金鼓)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종(金鐘)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신통(神通)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루(金樓)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륜(金輪)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강저(金剛杵)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옹(金甕)의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비녀 모양으로도 된다. 또 혹은 오색 광명(五色 光明)의 모양으로, 혹은 오색 원광(圓光)의 모양으로, 혹은 길상초(吉祥草) 모양으로, 혹은 푸른 연꽃 모양으로도 되었다. 또 혹은 금전(金田)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은전(銀田)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부처의 밭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뇌전(雷電) 모양으로도 되었다. 혹은 여래(如來)가 솟아나오는 모양으로, 혹은 지신(地神)이 솟아나오는 모양으로, 혹은 금봉(金鳳)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금오(金烏)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말이 사자(獅子)를 낳는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닭이 봉(鳳)을 낳는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청룡(靑龍)의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백상(白象)의 모양으로도 되고, 혹은 유저(遊猪) 모양으로도 변하고, 혹은 청사(靑蛇) 모양으로도 변해 보였다. 두 태자(太子)는 항상 골짜기 속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 공양하고, 밤이 되면 각각 자기 암자에서 도(道)를 닦았다.

이때 정신왕(淨神王)의 아우가 왕과 왕위(王位)를 다투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은 이를 폐하고, 네 사람의 장군을 보내서 산에 와서 이들 두 태자(太子)를 맞아오게 했다. 이들은 먼저 효명(孝明)의 암자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니 오색 구름이 7일 동안 그곳을 덮어 나라 사람들이 그 구름을 찾아 모두 모여 노부(鹵簿)를 벌여놓고 두 태자를 맞아가려 했다. 그러나 보천(寶川)은 울면서 이를 사양하므로 효명을 받들고 돌아가서 왕위에 오르게 했는데, 이가 나라를 여러 해 다스렸다[기記에는 말하기를, 왕위王位에 있은 지 20여 년이라 했다. 이는 대개 죽을 때의 나이가 26세라 한 것을 잘못 전한 것이다. 그가 왕위王位에 있었던 것은 다만 10여 년뿐이었다. 또 신문왕神文王의 아우가 왕위王位를 다투었다고 하였는데, ≪국사國史≫에는 그런 글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신룡(神龍) 원년[이것은 당唐나라 중종中宗의 복위復位한 해로서 신라 성덕왕聖德王 즉위 4년이다] 을사(乙巳) 3월 초나흘에 비로소 진여원(眞如院)을 고쳐 세웠는데 이때 성덕왕(聖德王)은 친히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산에 와서 전당(殿堂)을 세우고, 또 흙으로 문수보살의 소상(塑像)을 만들어서 당(堂)에 모셨다. 그리고 이름있는 중 영변(靈卞) 등 5명으로 하여금 ≪화엄경(華嚴經)≫을 오래 돌려 가면서 읽게 하고 이어 화엄사(華嚴社)를 조직해 오랫동안의 공비(供費)로, 해마다 봄과 가을이면 이 산에서 가까운 주현(州縣)으로부터 창조(倉租) 100석(石)과 정유(淨油) 한 섬을 바치는 것을 정해 놓은 규칙으로 삼았으며, 진여원에서 서쪽으로 6,000보(步)쯤 되는 의니점(矣尼岾) 고이현(古伊峴) 밖에 이르기까지의 시지(柴地) 15결(結)과 밤나무밭 6결(結), 좌위(坐位) 2결(結)을 내어서 장사(莊舍)를 세웠다.

보천(寶川)은 항상 그 영동(靈洞)의 물을 길어다가 마시더니 만년(晩年)에는 육신(肉身)이 공중을 날아 유사강(流沙江) 밖 울진국(蔚珍國) 장천굴(掌天窟)에 이르러 쉬었으므로 여기에서 수구다라니경(隨求陀羅尼經)을 외는 것으로 밤낮의 과업(課業)으로 삼았다. 어느날 장천굴(掌天窟)의 굴신(窟神)이 현신(現身)하여 그에게 말했다. "내가 이 굴의 신이 된 지가 이미 2,000년이나 되었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수구다라니경의 진리(眞理)를 들었습니다." 말을 마치자 신(神)은 보살계(菩薩戒)를 받기를 청했다. 그가 계(戒)를 받고 나자 그 이튿날 굴도 또한 형체가 없어져 버렸다. 보천(寶川)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곳에 20일 동안이나 머물고 있다가 오대산 신성굴(五臺山神聖窟)로 돌아갔다. 여기에서 또 50년 동안 참 마음을 닦았더니 도리천(도利天)의 신(神)이 삼시(三時)로 설법(說法)을 듣고, 정거천(淨居天)의 무리들은 차를 달여 올렸으며, 40명의 성인(聖人)은 10척 높이 하늘을 날면서 항상 그를 호위해 주고 그가 가졌던 지팡이는 하루에 세 번씩 소리를 내면서 방을 세 바퀴씩 돌아다니므로 이것을 쇠북과 경쇠로 삼아 수시로 수업(修業)했다. 문수보살이 혹 보천(寶川)의 이마에 물을 붓고 성도기별(成道記별)을 주기도 했다.

보천이 죽던 날, 후일에 산 속에서 행할 국가를 이롭게 할 일을 기록해 두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말했다. "이 산은 곧 백두산(白頭山)의 큰 산맥으로, 각 대(臺)는 진신이 항상 있는 곳이다. 푸른빛 방위인 동대(東臺) 북각(北角) 아래의 북대(北臺)의 남쪽 기슭 끝에는 마땅히 관음방(觀音房)을 두어서 원상(圓像)의 관음보살과 푸른 바탕에 그린 1만 관음보살상을 모시도록 하라. 그리고 복전승(福田僧) 5명은 낮에는 8권의 ≪금경(金經)≫과 ≪인왕반야(仁王般若)≫·천수주(千手呪)를 읽고, 밤엔 ≪관음경(觀音經)≫ 예참(禮懺)을 염송(念誦)하고, 그곳을 원통사(圓通社)라 하라. 붉은빛 방위인 남대(南臺) 남쪽 면에는 지장방(地藏房)을 두어 원상(圓像) 지장보살과 붉은 바탕에 그린 팔대보살(八大菩薩)을 우두머리로 한 1만 지장보살을 모시라. 복전승 5명으로 하여금 낮에는 ≪지장경(地藏經)≫과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읽고, 밤엔 ≪점찰경(占察經)≫ 예참(禮懺)을 염송하고 이곳을 금강사(金剛社)라 일컬어라. 흰 빛 바위인 서대(西臺) 남쪽 면엔 미타방(彌陀房)을 두어 원상(圓像) 무량수불(無量壽佛)과 흰 바탕에 그린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우두머리로 한 1만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모시게 하라. 여기에는 복전승(福田僧) 5명으로 하여금 낮에는 8권의 ≪법화(法華)≫를 읽고, 밤엔 아미타불(阿彌陀佛) 예참을 염송하고 수정사(水精社)라 일컬어라. 검은 빛 방위인 북대(北臺) 남쪽 면에는 나한당(羅漢堂)을 두어 원상(圓像) 석가불(釋迦佛)과 검은 바탕에 그린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시라. 복전승 5명은 낮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게 하고 밤엔 ≪열반경(涅槃經)≫ 예참(禮懺)을 염송(念誦)케 하고 백련사(白蓮社)라 일컬어라. 누른 빛 방위인 중대(中臺)의 진여원(眞如院)에는 가운데에는 이상(泥像)으로 된 문수보살 부동상(不動像)을 모시고 뒷벽에는 누른 바탕에 그린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우두머리로 한 삼십륙 문수보살을 모시라. 복전승 5명은 낮에는 ≪화엄경≫과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읽고, 밤에는 문수보살 예참을 염송하고 이곳을 화엄사(華嚴社)라 일컬어라. 보천암(寶川庵)을 고쳐 세워 화장사(華藏寺)라 하고 원상(圓像) 비로자나삼존(毗盧遮那三尊)과 대장경(大藏經)을 모시라. 복전승 5명은 낮에는 문장경(門藏經)을 읽고 밤에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염송할 것이며, 매년 100일 동안 화엄회(華嚴會)를 베풀고 이곳을 법륜사(法輪社)라 일컬어라. 이 화장사(華藏寺)를 오대사(五臺社)의 본사(本寺)로 하여 굳게 지키도록 하라. 여기에는 정행 복전(淨行 福田)에게 명하여 길이 향화(香火)를 계속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국왕(國王)은 오래 사시고 백성은 편안할 것이며, 문무(文武)가 모두 화평하고 백곡이 풍성할 것이다. 또 하원(下院)에 문수갑사(文殊岬寺)를 배치하여 사(社)의 도회(都會)로 삼게 하라. 여기에는 복전승(福田僧) 7명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화엄신중(華嚴神衆)의 예참(禮懺)을 행하고 위의 37명이 재(齋)에 쓰는 비용과 의복의 비용을 하서부(河西府) 도내(道內) 8주(州)의 조세(租稅)로써 공양하는 네 가지 물건의 자금에 충당할 것이다. 이렇게 대대(代代)의 임금이 잊지 않고 받들어 행한다면 다행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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