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황룡사(皇龍寺)의 종을 주조했는데, 길이는 1장(丈) 3촌(寸), 두께는 9촌, 무게는 49만 7,581 근이었다. 시주(施主)는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이요, 공장이는 이상택(里上宅) 하전(下典)이었다. 숙종(肅宗) 때에 새 종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6척 8촌이었다.
또 이듬해 을미(乙未[755])에 분황사(芬皇寺)의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의 동상(銅像)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30만 6,700 근이요, 공장이는 본피부(本彼部) 강고내말(强古乃未)이었다. 또 경덕왕(景德王)은 황동(黃銅)
12만 근을 내놓아 그 아버지 성덕왕(聖德王)을 위하여 큰 종 하나를 만들려 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그 아들 혜공대왕(惠恭大王)
건운(乾運)이 대력(大曆) 경술(庚戌[770]) 12월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공장이들을 모아서 기어이 완성시켜 봉덕사(奉德寺)에
안치(安置)했다. 이 봉덕사는 효성왕(孝成王)이 개원(開元) 26년 무인(戊寅[738])에 그 아버지 성덕대왕(聖德大王)의 복을 빌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의 명(銘)에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鐘之銘)"이라 했다[성덕대왕은 경덕대왕의 아버지
전광대왕 典光大王이다. 종은 본래 경덕대왕이 그 아버지를 위해서 시주한 금金이었으므로 성덕왕의 종이라고 한
것이다].
조산대부(朝散大夫) 전태자사의랑(前太子司議郎) 한림랑(翰林郞) 금필월(해)金弼월(奚)가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종의 명(銘)을 지었으니 글이 너무 길어서 여기에 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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