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 그리고 여러 사람의
전기에는 모두 이렇게 말했다. "신라 월성(月城) 동쪽, 용궁(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이것은 곧
전불(前佛) 때의 절터이며, 지금 황룡사(皇龍寺) 터는 곧 일곱 절의 하나이다."
≪국사(國史)≫를 상고하면, 진흥왕 즉위 14년 개국(開國) 3년 계유(癸酉[
553]) 2월에 동쪽에 신궁(新宮)을 세웠는데 여기에서 황룡(皇(黃)龍)이 나타났으므로 왕은 이것을 의심해서, 고쳐서 황룡사(皇(黃)龍寺)라
했다. 연좌석은 불전(佛殿) 후면(後面)에 있었다. 일찍이 한 번 본 일이 있는데 돌의 높이는 5, 6척이나 되었으나 그
둘레는 겨우 서 발밖에 되지 않았으며 우뚝하게 서 있고 그 위는 편편했다. 진흥왕(眞興王)이 절을 세운 이후로 두 번이나 화재를
겪었으므로 돌이 갈라진 곳이 있다. 그래서 절의 중이 여기에 쇠를 붙여서 보호하게 한다.
여기에 찬(讚)해 말한다.
불교가 침체함이 얼마인지 기억할 수
없는데,
오직 연좌석(宴坐石)만이 그대로 남아
있네.
상전(桑田)이 변해 몇 번이나 창해(滄海)가
되었는가
아깝게도 우뚝한 채 아무 데로도 옮기지
않았네.
이윽고 몽고(蒙古)의 큰 병란 이후에 불전(佛殿)과 탑은 모두 불타 버렸다.
그래서 이 돌도 역시 흙에 파묻혀서 겨우 지면(地面)과 같이 편편해진 것이다.
≪아함경(阿含經)≫을 상고해 보면 이러하다. 가섭불(迦葉佛)은 바로
현겁(賢劫)의 세 번째 부처다. 그는 사람의 나이로 쳐서 2만 세 때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한다. 여기에 의거해서
증감법(增減法)으로 계산한다면 언제나 성겁(成劫)의 시초에는 모두 무량세(無量歲)를 누렸다. 이것이 점점 감해져서 8만 세에 이르면
그때가 바로 주겁(住劫)의 시초가 된다. 이때부터 또 100년마다 1 세씩 감하여 10 세가 되면 일감(一減)이 되고 또 증가하여
사람의 나이 8만 세가 되면 일증(一增)이 된다. 이렇게 해서 20번 감하고 20번 더하면 한 주겁(住劫)이 된다. 이 한
주겁 동안에 1,000의 부처가 세상에 나타나는데, 지금 본사(本師)인 석가불(釋迦佛)은 네 번째의 부처이다. 이 네 번째의 부처는
모두 제9감(第九減) 중에 나타난다. 석가세존(釋迦世尊)이 100세 때부터 가섭불의 2만 세까지는 이미 200만여 세나 된다. 만일
현겁(現劫) 시초의 첫째 부처였던 구류손불(拘留孫佛) 때에 이르면 또 몇 만 세(歲)가 된다. 구류손불 때로부터 위로 올라가
겁초(劫初)의 무량세(無量歲)를 누리던 때 까지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석가세존으로부터 아래로 지금의 지원(至元) 18년
신사(辛巳[1281])까지는 이미 2,230년이고 보면 구류손불로부터 가섭불 때를 지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또 몇만 세나
되겠는가.
본조(本朝)의 명사(名士)의 오세문(五世文)이 역대가(歷代歌)를 지었는데 여기에 의하면,
대금(大金)의 정우(貞祐) 7년 기묘(己卯[1219])에서 거슬러 따져서 4만 9,600여 세에 이르면 바로 반고씨(盤古氏)가 천지를 개벽한
무인년(戊寅年)이 된다고 했다. 또 연희궁(延禧宮) 녹사(錄事) 김희령(金希寧)이 지은 대일역법(大一曆法)에 의하면, 천지 개벽한
상원(上元) 갑자(甲子)로부터 원풍(元豊) 갑자(甲子[1084])에 이르기까지 193만 7,641 세라고 했다. 또
≪찬고도(纂古圖)≫에서는, 천지가 개벽한 때로부터 획린(獲麟[前 477])에 이르기까지가 276만 세라고 했다. 여러
경문(經文)을 상고해 보면 또 가섭불 때부터 지금까지가 바로 이 연좌석의 나이가 된다고 하였으니, 오히려 겁초(劫初)의 천지가 때와는 어린애
나이가 될 정도다. 이들 삼가(三家)의 말들이 오히려 이 어린 돌의 나이에도 미치지 못하니 그들은 천지개벽의 설(說)에 있어서는 몹시
소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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