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름은 응렴(膺廉)이니 나이 18세에 국선(國仙)이 되었다. 약관(弱冠)에
이르자 헌안대왕(憲安大王)은 그를 불러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과 물었다. "낭(郎)은 국선이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으니 무슨
이상한 일을 본 것이 있는가." "신(臣)은 아름다운 행실이 있는 자 셋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나에게 들려 주게."
"남의 웃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면서도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이 그 하나요, 세력 있고 부자이면서도 옷차림을 검소하게 한
사람이 그 둘이요, 본래부터 귀(貴)하고 세력이 있으면서도 그 위력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그 셋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낭이
어질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나에게 두 딸이 있는데 낭의 시중을 들게 하리라." 낭이
자리를 피하여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물러가 부모에게 고했다. 부모는 놀라고 기뻐하여 그 자제(子弟)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기를, "왕의
맏공주(公主)는 모양이 몹시 초라하고 둘째 공주는 매우 아름답다 하니 그를 아내로 삼으면 다행이겠다"하였다. 낭의 무리들 중에
우두머리로 있는 범교사(範敎師)가 이 말을 듣고 낭의 집에 가서 낭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공주를 공의 아내로 주고자 한다니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어느 공주에게 장가들려는가?" "부모께서 둘째 공주가 좋겠다고 하십니다."
범교사는 말한다.
"낭이 만일 둘째 공주에게 장가를 든다면 나는 반드시 낭의 면전에서 죽을 것이고,
맏공주에게 장가간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경계해서 하도록 하라." "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 뒤에
왕이 날을 가려서 낭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했다. "두 딸 중에서 공의 뜻대로 결정하도록 하라." 사자가 돌아와서 낭의
의사를 왕에게 보고했다. "맏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
그런 지 3개월이 지나서 왕은 병이 위독했다. 여러 신하들을 불러 놓고 말한다.
"내게는 사내자식이 없으니 죽은 뒤의 일은 마땅히 맏딸의 남편 응렴(膺廉)이 이어야 할 것이다." 이튿날 왕이 죽으니 낭이
유언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 이에 범교사는 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제가 아뢴 세 가지 아름다운 일이 이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맏공주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그 하나요, 예전에 흠모하시던 둘째 공주에게 이제 쉽게
장가드실 수 있게 되신 것이 그 둘이요, 맏공주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왕과 부인이 매우 기뻐하신 것이 그 셋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고맙게 여겨서 대덕(大德)이란 벼슬을 주고 금(金) 130냥을
하사했다.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경문(景文)이라고 했다.
일찍이 왕의 침전(寢殿)에는 날마다 저녁만 되면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인(宮人)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이를 쫓아내려 했지만 왕은 말했다. "내게 만일 뱀이 없으면 편하게 잘 수가 없으니 쫓지
말라." 왕이 잘 때에는 언제나 뱀이 혀를 내밀어 온 가슴을 덮고 있었다.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는데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복두장(복頭匠) 한 사람만은 이 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죽을
때에 도림사(道林寺)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 그런
후로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 왕은 이 소리가 듣기 싫어서 대를 베어
버리고 그 대신 산수유(山茱萸) 나무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거기에서는 다만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고 하는 소리가
났다[도림사道林寺는 예전에 서울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숲 가에 있었다].
국선 요원랑(邀元郞)·예흔랑(譽昕郞)·계원(桂元)·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을
유람하는데 은근히 임금을 위해서 나라를 다스리려는 뜻이 있었다. 이에 노래 세 수(首)를 짓고, 다시 심필(心弼) 사지(舍知)를
시켜서 공책을 주어 대구화상(大矩和尙)에게 보내어 노래 세 수를 짓게 하니 첫째는 현금포곡(玄琴抱曲)이요, 둘째는 대도곡(大道曲)이요, 셋째는
문군곡(問群曲)이었다. 대궐에 들어가 왕께 아뢰니 왕은 기뻐하여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노래는 알 수가
없다.
digitized by
jikji. HiSTO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