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古記)≫에 이렇게 말했다. "전한(前漢)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전 58])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흘승골성(訖升骨城[대요大遼 의주醫州 지경에 있음])에 내려왔다.
오룡차(五龍車)를 타고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고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고 했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라 하고 해(解)로 씨(氏)를 삼았다. 왕은 뒤에 상제(上帝)의 명령으로 도읍을
동부여(東扶餘)로 옮겼다. 동명제(東明帝)는 북부여(北扶餘)를 계승하여 일어나서 졸본(卒本州)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卒本扶餘)가
되었으니, 이것이 곧 고구려(高句麗)의 시조(始祖)이다[아래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