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pia 삼국유사Home으로
today : 12   total : 131464  통계보기
三國遺事卷第一
紀異 第一 上
古朝鮮 원문국역문
魏滿朝鮮 원문국역문
馬韓 원문국역문
二府 원문국역문
七十二國 원문국역문
樂浪國 원문국역문
北帶方 원문국역문
南帶方 원문국역문
靺鞨 渤海 원문국역문
伊西國 원문국역문
五伽耶 원문국역문
北扶餘 원문국역문
東扶餘 원문국역문
高句麗 원문국역문
卞韓 百濟 원문국역문
辰韓 원문국역문
又四節遊宅 원문국역문
新羅始祖 赫居世王 원문국역문
第二南解王 원문국역문
第三弩禮王 원문국역문
第四脫解王 원문국역문
金閼智 脫解王代 원문국역문
延烏郎 細烏女 원문국역문
未鄒王 竹葉軍 원문국역문
奈勿王 金堤上 원문국역문
第十八實聖王 원문국역문
射琴匣 원문국역문
智哲老王 원문국역문
眞興王 원문국역문
桃花女 鼻荊郞 원문국역문
天賜玉帶 원문국역문
善德王知幾三事 원문국역문
眞德王 원문국역문
金庾信 원문국역문
太宗春秋公 원문국역문
長春郎 罷郎 원문국역문
三國遺事卷第二
紀異 第二 下
文虎王法敏 원문국역문
萬波息笛 원문국역문
孝昭王代 竹旨郞 원문국역문
聖德王 원문국역문
水路夫人 원문국역문
孝成王 원문국역문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원문국역문
惠恭王 원문국역문
元聖大王 원문국역문
早雪 원문국역문
興德王 鸚 원문국역문
神武大王 閻長 弓巴 원문국역문
四十八景文大王 원문국역문
處容郎 望海寺 원문국역문
眞聖女大王 居陁知 원문국역문
孝恭王 원문국역문
景明王 원문국역문
景哀王 원문국역문
金傅大王 원문국역문
南扶餘 前百濟 北扶餘已見上 원문국역문
武王 원문국역문
後百濟 甄萱 원문국역문
駕洛國記 원문국역문
居登王 원문국역문
麻品王 원문국역문
居叱彌王 원문국역문
伊尸品王 원문국역문
坐知王 원문국역문
吹希王 원문국역문
銍知王 원문국역문
鉗知王 원문국역문
仇衡王 원문국역문
三國遺事卷第三
興法第三
順道肇麗 원문국역문
難陁闢濟 원문국역문
阿道基羅 원문국역문
原宗興法 厭髑滅身 원문국역문
法王禁殺 원문국역문
寶藏奉老 普德移庵 원문국역문
東京興輪寺金堂十聖 원문국역문
塔像第四
迦葉佛宴坐石 원문국역문
遼東城育王塔 원문국역문
金官城婆娑石塔 원문국역문
高麗靈塔寺 원문국역문
皇龍寺丈六 원문국역문
皇龍寺九層塔 원문국역문
皇龍寺鐘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원문국역문
靈妙寺丈六 원문국역문
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원문국역문
生義寺石彌勒 원문국역문
興輪寺壁畵普賢 원문국역문
三所觀音 衆生寺 원문국역문
栢栗寺 원문국역문
敏藏寺 원문국역문
前後所將舍利 원문국역문
彌勒仙花 未尸郎 眞慈師 원문국역문
南白月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원문국역문
芬皇寺千手大悲 盲兒得眼 원문국역문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원문국역문
魚山佛影 원문국역문
臺山五萬眞身 원문국역문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원문국역문
臺山月精寺五類聖衆 원문국역문
南月山 원문국역문
天龍寺 원문국역문
鍪藏寺彌陁殿 원문국역문
伯嚴寺石塔舍利 원문국역문
靈鷲寺 원문국역문
有德寺 원문국역문
五臺山文殊寺石塔記 원문국역문
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圓光西學 원문국역문
寶壤梨木 원문국역문
良志使錫 원문국역문
歸竺諸師 원문국역문
二惠同塵 원문국역문
慈藏定律 원문국역문
元曉不覊 원문국역문
義湘傳敎 원문국역문
虫也福不言 원문국역문
眞表傳簡 원문국역문
關東楓岳鉢淵藪石記 원문국역문
勝詮髑髏 원문국역문
心地繼祖 원문국역문
賢瑜珈 海華嚴 원문국역문
三國遺事 卷第五
神咒 第六
密本摧邪 원문국역문
惠通降龍 원문국역문
明朗神印 원문국역문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 원문국역문
郁面婢念佛西昇 원문국역문
廣德 嚴莊 원문국역문
憬興遇聖 원문국역문
眞身受供 원문국역문
月明師兜率歌 원문국역문
善律還生 원문국역문
金現感虎 원문국역문
融天師彗星歌 眞平王代 원문국역문
正秀師救氷女 원문국역문
避隱 第八
朗智乘雲 普賢樹 원문국역문
緣會逃名 文殊岾 원문국역문
惠現求靜 원문국역문
信忠掛冠 원문국역문
包山二聖 원문국역문
永才遇賊 원문국역문
勿稽子 원문국역문
迎如師 원문국역문
布川山 五比丘 景德王代 원문국역문
念佛師 원문국역문
孝善 第九
眞定師孝善雙美 원문국역문
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 원문국역문
向得舍知割股供親 景德王代 원문국역문
孫順埋兒 興德王代 원문국역문
貧女養母 원문국역문
跋文 원문국역문
개요
목록 원문국역문
해제
범례
home三國遺事 卷第一紀異 第一 > 古朝鮮
first prev next last
원문국역문 국역원문비교보기
http://www.histopia.net/url.php?ID=yusa_01_001r ::: URL
삼국유사 권제1

기이(紀異) 제1

첫 머리에 말한다.

대체로 옛날 성인(聖人)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고, 인(仁)과 의(義)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때문에 괴상한 일이나 힘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왕(帝王)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符命)을 얻고 도록(圖록)을 받게 된다.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뒤에라야 큰 변의 틈을 타서 대기(大器)를 잡아 대업을 이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하수(河水)에서 그림이 나왔고,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와서 이로써 성인(聖人)이 일어났던 것이다.  무지개가 신모(神母)의 몸을 두르더니 복희(伏羲)를 낳고, 용이 여등(女登)에게 교접하더니 염제(炎帝)를 낳았다.  황아(皇娥)가 궁상(窮桑)이라는 들판에서 노는데 자칭 백제(白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동(神童)이 와서 황아와 교접하여 소호(少昊)를 낳았다.  간적(簡狄)은 알[卵] 하나를 삼키더니 설[契]를 낳고 강원(姜嫄)은 한 거인(巨人)의 발자취를 밟고서 기(充)를 낳았다.  요(堯)의 어머니는 잉태한 지 14개월이 된 뒤에 요(堯)를 낳았고, 패공(沛公)의 어머니는 용(龍)과 큰 연못에서 교접해 패공을 낳았다.  이 뒤로도 이런 일이 많지만 여기에선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삼국(三國)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으랴.  이 기이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것은 그 뜻이 실로 여기에 있다.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阿斯達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는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는데 백주白州에 있었다.  혹은 또 개성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고(高)와 같은 시기였다."

또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말함]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三位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해 줄 만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桓雄)에게 주어 인간(人間)의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마루턱(곧 태백산太白山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이른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壽命)·질병(疾病)·형벌(刑罰)·선악(善惡) 등을 주관하고, 모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敎化)했다.  이때 범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신웅(神雄), 즉 환웅에게 빌어 사람이 되어지기를 원했다.  이때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했다.

이에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삼칠일(21일) 동안 조심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조심을 잘못해서 사람의 몸으로 변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혼인해서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단수(壇樹) 밑에서 아기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이 잠시 거짓 변하여 그와 혼인했더니 이내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의 이름을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한 것이다.  단군 왕검은 당고(唐高)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庚寅年 [요堯가 즉위한 원년元年은 무진戊辰년이다.  그러니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庚寅은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닌지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京]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기더니 궁홀산(弓忽山 [일명 방홀산方忽山]이라고도 하고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己卯)년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  이에 단군(檀君)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서 아사달(阿斯達)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당나라 ≪배구전(裴矩傳)≫에는 이렇게 전한다.  "고려(高麗)는 원래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해주海州]이었다.  주(周)나라에서 기자(箕子)를 봉해 줌으로 해서 조선(朝鮮)이라 했다.  한(漢)나라에서는 세 군(郡)으로 나누어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곧 현토(玄토)·낙랑(樂浪)·대방(帶方[북대방北帶方]이다."

≪통전(通典)≫에도 역시 이 말과 같다[한서漢書에는 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토玄토의 네 군郡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군郡으로 되어 있고, 그 이름도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일까?].

digitized by jikji. HiSTOPIA™
도움말
오류신고
Top으로
Copyright ⓒ 2008-2019 HISTOPIA™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Sungjee Joo